저는 광주 사람입니다. 지금은 회색, 검정색 택시가 도로를 달리지만,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노란 택시였습니다.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그 노란 택시가 지금도 길을 걸을 때면 눈앞에 그려집니다. 아버지 세대의 얼굴이 겹치고, 군대를 갔다 왔을 때 마주쳤던 광주 사람과 군인 사이의 서먹하고 날카로운 시선도 떠오릅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돌아가신 분들을 하나둘 떠올리게 되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 중심에 이 영화가 있습니다. 광주 사람으로서 눈물이 나고, 안타깝고, 속상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작품입니다. 독재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일제강점기의 기억과 겹치면서 다시 한번 새기게 되는 영화. 바쁘게 살다 보면 잊기 쉬운 그 날의 이야기를 택시운전사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붙잡아 둡니다.

감독 장훈,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연출가
택시운전사를 만든 장훈 감독은 화려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연출보다 사람 사이의 감정과 관계를 중심에 두는 감독입니다. 1975년생인 그는 영화 의형제(2010), 고지전(2011)으로 충무로에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의형제는 남북 간첩 수사를 코미디와 드라마로 풀어낸 작품이고, 고지전은 6.25 전쟁의 최전선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담은 전쟁 영화입니다. 두 작품 모두 이념이나 대립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훈 감독의 이런 연출 성향이 택시운전사에서 가장 잘 발휘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훈 감독의 연출에서 주목할 부분은 다큐드라마 기법(docudrama technique)의 활용입니다. 다큐드라마 기법이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되, 그 안에 허구의 인물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녹여 넣어 관객이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정면으로 다루되, 그것을 서울 출신 평범한 택시기사 만섭의 눈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관객은 역사를 설명이 아닌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몰랐던 사람이 알아가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기 때문에, 광주를 잘 모르는 관객도 자연스럽게 그 날의 감정 속으로 들어갑니다.
택시운전사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광주 현장을 취재한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힌츠페터는 당시 촬영한 영상을 독일과 해외로 전송해 광주의 실상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가 남긴 기록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증거 자료로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5.18 기념재단이 관련 자료를 공식적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출처: 5.18 기념재단). 영화는 그 역사적 사실 위에 한국인 택시기사 만섭이라는 인물을 얹어, 그 날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 전달합니다.
줄거리, 몰랐던 사람이 알게 되는 이야기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는 서울에 사는 택시기사 김만섭에서 시작됩니다. 딸 하나를 혼자 키우며 밀린 월세를 걱정하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그는 외국 손님을 광주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큰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별 생각 없이 독일 기자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향합니다. 이때만 해도 만섭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저는 이 설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 사람인 저는 자라면서 그 날의 이야기를 조각조각 들어왔습니다. 군대에서 만난 타 지역 출신 선임들은 광주를 모르거나 왜곡된 이야기를 믿고 있기도 했습니다. 만섭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악의가 없는, 그냥 몰랐던 사람. 그래서 만섭이 광주 현실을 마주할 때의 충격이 더 크게 전해집니다. 관객은 만섭의 눈을 통해 처음 그것을 보는 것처럼 같이 무너집니다.
영화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단순히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만섭과 피터를 도우며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 대학생 구재식 등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서러움을 안고도 거리로 나선 주민들의 분투적인 행진이 화면 위에 담깁니다. 광주 사람으로서 그 장면들은 단순한 영화 속 장면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고 계신 어르신들의 얼굴이 겹치고, 돌아가신 분들의 모습이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공간과 이동의 상징도 주목할 만합니다. 프로파간다 차단(information blockade)이란 특정 정보가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권력이 통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1980년 광주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었습니다. 만섭의 택시가 그 봉쇄된 공간을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는 설정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됩니다. 진실을 실어 나르는 택시. 그 노란 택시가 길을 달릴 때마다 가슴이 묵직해지는 이유입니다.
흥행과 평가, 역사가 영화가 되는 방식
택시운전사는 2017년 8월 2일 개봉해 누적 관객 1,218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였으며, 5.18을 소재로 한 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 기록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으로 2017년 전체 개봉작 중에서도 손꼽히는 성과였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천만 관객을 넘긴 것은 단순히 잘 만든 영화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가 아직 많은 사람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고, 잊으면 안 된다는 감각이 극장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택시운전사의 주요 수상 및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17년 국내 박스오피스 1위, 누적 관객 1,218만 명
-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수상
-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송강호)
- 2017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초청 상영
- 미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 개봉 및 현지 언론 호평
주연 송강호 배우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특히 빛납니다. 무관심하고 무지했던 평범한 남자가 진실을 마주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송강호 배우는 과장 없이 담담하게 표현합니다.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보다, 조용히 참으면서 눈빛 하나로 전달하는 장면들이 더 깊이 남습니다.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독재 정치의 공포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온 우리 민족이 또다시 같은 편끼리 총구를 겨눠야 했던 그 날의 비극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온 권력의 폭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광주의 비운의 날을 담은 이 영화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이며, 전 세계 누구에게나 권력이 시민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조용하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지금 바쁘게 살아가고 있더라도, 이 영화만큼은 한번 시간을 내어 꼭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5.18 기념재단 자료 및 직접 관람 경험, 유튜브 영화 리뷰 참고